테레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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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수녀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출생1910년 8월 26일(1910-08-26)
오스만 제국 코소보주 스코페
(現 북마케도니아 스코페)
선종1997년 9월 5일(1997-09-05) (향년 87세)
인도 서벵골주 콜카타
교파가톨릭교회
시복2003년 10월 1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성2016년 9월 4일 교황 프란치스코
축일9월 5일
상징수도복, 묵주
수호세계 청년 대회, 사랑의 교회

테레사 수녀(영어: Mother Teresa, 1910년 8월 26일 ~ 1997년 9월 5일)는 주로 인도에서 활동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녀다. 1950년에 인도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라는 천주교 계통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헌신하였다. 본명은 아녜저 곤제 보야지우(알바니아어: Anjezë Gonxhe Bojaxhiu)이다. 2016년 9월 5일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1970년대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졌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받았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는 계속 확장하여 그녀가 사망하기까지 나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거처, 무료 급식소, 상담소, 고아원, 학교 등을 포함해 123개 국가에 610개의 선교 단체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어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라는 호칭을 받았다.[1][2]

그녀의 공인 전기는 나빈 차와가 작성하고 1992년에 출판했으며 영화와 기타 책의 주제로 활동했다. 2017년 9월 6일, 테레사 수녀와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콜카타의 로마 가톨릭 대교구의 공동 후원자로 지명되었다.[3]

테레사(Teresa)라고 불리기도 한다.

생애[편집]

북마케도니아스코페에서 알바니아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콜 보야지우는 1919년 시 의원 자격으로 정치 행사에도 참가했다가 의문사하였다.[4] 1928년에 아일랜드라스판햄으로 이주해서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 하였다. 이때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녀가 되고 테레사로 개명하였다. 그 이후 인도로 선교 활동과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이던 인도로 이주하였다. 1947년, 인도 자치령이 독립하고 1950년인도 공화국으로 국호를 결정하자, 인도에 귀화해 로마 가톨릭 계열의 선교 단체인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1952년 8월 22일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Home for Sick and Dying Destitutes) 또는 "순결한 마음의 장소"(Place of Pure Heart, 벵골어: Nirmal Hriday의 번역)이라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지었다. 이때 테레사 수녀는 콜카타 시청에서 제공한 건물을 썼는데, 칼리 신전 뒤에 있었고 순례자들의 숙소로 쓰였다. 건물이 사용하기 편리해서[5] 기꺼이 쓰려고 마음먹었다. 당시 힌두교도들은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선교 활동을 위해 건물을 쓸 것을 의심해서 시위를 벌였으나, 사랑의 선 교회 수녀들이 종교에 구애 없이 복지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받아들였다.[6] 1955년 9월 23일 "때의 집"(시슈 브하반)이라는 어린이 보호 시설을 개설하였고, 1958년에는 여기에 90명의 어린이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경찰과 공무원들이 고아와 버려진 어린이들을 보냈으며, 어린이들의 집에서는 이들을 먹이고 병도 고쳐주었다. 어린이들은 교육도 받고 해외로 입양되었다. 갓 난 아기는 로마 가톨릭 교도인 것을 알 수 있을 때만 세례를 주었다.[7] 1968년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커뮤니티인 평화의 마을(Shanti Nagar)을 개설하고, 1975년에는 회복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선물"(Prem Dan)이란 이름의 장기 요양소를 만들었다. 이런 여러 사회봉사 활동 덕분에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97년 캘커타에서 87세의 나이로 선종 하였다.

저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청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 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
미국대통령로널드 레이건이 테레사 수녀에게 평화의 메달을 수여할뻔 하는 모습 (1985년)

각주[편집]

  1. Associate Press. (October 14, 2003). "Full house for Mother Teresa ceremony Archived 2003년 10월 17일 - 웨이백 머신". CNN. Retrieved May 30, 2007.
  2. "Blessed Mother Teresa". (2007). Encyclopædia Britannica. Retrieved May 30, 2007.
  3. “Spiritual Art Gallery Exhibit (UH19) MOTHER TERESA Artist – Chandan Pramanik, India” (영어). 2020년 5월 1일에 확인함. 
  4. 이에 대해 당시 북마케도니아를 새로 지배하게 된 세르비아 정부에 의한 독살설도 있다.
  5. 전기 공급, 취사설비, 넓은 안마당
  6. 에마 존슨. 〈마더 테레사〉. 김석희 옮김. 《20세기를 만든 사람들》. 작가정신. 76-80쪽. 
  7. 에마 존슨, 앞의 책, p.81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