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카델릭 - 나무위키

펑카델릭

최근 수정 시각:
편집 요청
이용중인 IP는 문서 훼손행위가 자주 발생하는 IP이므로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이 메세지는 같은 인터넷 공급업체를 사용하는 다른 누군가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85660)
만료일: 무기한
사유: Microsoft 할당 대역(로그인 허용 차단)

편집 권한이 부족한 경우 아래의 '편집 요청' 버튼으로 편집 요청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편집 요청 도움말]
토론 역사
펑카델릭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펼치기 · 접기 ]

[ 펼치기 · 접기 ]
이름
팔리아멘트-펑카델릭
PARLIAMENT-FUNKADELIC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제롬 브레일리, 조지 클린턴, 부치 콜린스, 레이먼드 데이비스, 티키 풀우드,
글렌 고인스, 마이클 햄프턴, 퍼지 해스킨스, 에디 헤이즐, 월터 모리슨,
코델 모슨, 윌리엄 "빌리 배스" 넬슨, 개리 샤이더, 캘빈 사이먼, 그레이디 토머스
, 버니 워렐
입성 연도
1997년



[ 펼치기 · 접기 ]
어클레임드 뮤직의 올타임 아티스트 순위. 기본적으로 역사상의 앨범/노래의 순위를 매기는 형식의 사이트이지만, 개인의 취향을 모두 배제하고 음악 평론가들, 또는 잡지 등의 매체들이 매긴 순위를 종합해서 포인트를 줘서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순위가 매겨진 앨범과 곡의 리스트를 공개된 공식을 바탕으로 합해 올타임 아티스트들의 순위도 매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6위
7위
8위
9위
1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101위 ~ 4112위: 공식 사이트

[ 펼치기 · 접기 ]
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매리언 앤더슨, 밥 딜런, 존 레논, 줄리 스턴, 키티 웰스
보 디들리, 밀스 브라더스, 로이 오비슨, 폴 로브슨
밴 클라이번, 펑크 브라더스, 엘라 젠킨스, 소니 롤린스, 아티 쇼, 독 왓슨
에디 아놀드, 아트 블래키, 카터 패밀리, 모턴 굴드, 재니스 조플린, 레드 제플린, 제리 리 루이스, 젤리 롤 모턴, 파인톱 퍼킨스, 스태플 싱어즈
조안 바에즈, 부커 티 앤 엠지 에스, 마리아 칼라스, 오넷 콜맨, 도어즈, 그레이트풀 데드, 밥 윌스
버트 배커랙, 더 밴드, 캡 캘러웨이, 도리스 데이, 이작 펄만, 맥스 로치, 얼 스크럭스
진 오트리, 더 블라인드 보이즈 오브 알라바마, 포 탑스, 행크 존스, 브렌다 리, 딘 마틴, 톰 팩스톤
레너드 코헨, 바비 다린, 데이비드 "허니보이" 에드워즈, 마이클 잭슨, 로레타 린, 앙드레 프레빈, 클락 테리
줄리 앤드류스, 로이 헤인즈, 줄리아드 현악 콰르텟, 킹스턴 트리오, 돌리 파튼, 라몬즈, 조지 비벌리 시어
비틀즈, 클리프턴 체니어, 아이즐리 브라더스, 크라프트베르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아르만도 만사네로, 마우드 파웰
비 지스, 피에르 불레즈, 버디 가이, 조지 해리슨, 플라코 지메네즈, 루빈 브라더스, 웨인 쇼터
할 블레인, 닐 다이아몬드, 에밀루 해리스, 루이스 조던, 더 미터스, , 티나 터너
보니 레잇

[ 펼치기 · 접기 ]
※ 2010년 미국의 케이블 음악채널 VH1에서 음악평론가와 현직 뮤지션, 기타 음악산업 종사자 등 총 200명 이상에게 투표를 실시하여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Top 100' 순위를 정했다.
1위
2위
3위
4위
5위
6위
7위
8위
9위
1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프리텐더스

펑카델릭
Funkadelic
Funkadelic
국적
결성
미국 국기 미국 뉴저지 플레인필드
활동 기간
데뷔
데뷔 앨범
Funkadelic
해체
멤버
조지 클린턴
부치 콜린스
제롬 브레일리
레이먼드 데이비스
티키 풀우드
글렌 고인스
마이클 햄프턴
퍼지 해스킨스
에디 헤이즐
월터 모리슨
코델 모슨
윌리엄 "빌리 배스" 넬슨
개리 샤이더
캘빈 사이먼
그레이디 토머스
버니 워렐 등[1]
장르
레이블
웨스트바운드, 워너 브라더스

1. 개요2. 상세3. 역사
3.1. 팔리아멘트3.2. 펑카델릭
4. 평가와 영향력5. 디스코그래피
5.1. 펑카델릭
5.1.1. 앨범5.1.2. 싱글
5.1.2.1. 빌보드 핫 100 1 ~ 40위5.1.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
5.2. 팔리아멘트
5.2.1. 앨범5.2.2. 싱글
5.2.2.1. 빌보드 핫 100 1 ~ 40위5.2.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5.2.2.3. 그 외 싱글
6. 여담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1970년대펑크(funk) 록을 개척한 밴드로, 펑크(funk)사이키델릭 록을 결합시켜 혁신적인 음악성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3. 역사[편집]

3.1. 팔리아멘트[편집]

펑카델릭이란 밴드를 이야기하려면 우선 팔리아멘트라는 밴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팔리아멘트라는 밴드는 모타운에서 프로듀서와 작곡가로 활동했던 조지 클린턴이 만든 밴드였다.[2] 이때의 팔리아멘트는 펑크 대신 두왑 음악[3] 을 주로 하다가 이후 점점 펑크 음악으로 방향성이 변하게 된다. 초창기 팔리아멘트의 멤버는 조지 클린턴을 포함한 다섯 명의 보컬로 이루어졌었는데, 이후 라이브를 위해 다섯 명의 세션이 추가로 멤버로 합류하였다.

조지 클린턴은 이후 원래 계약하였던 레빌롯 레코드와 계약을 해지하고 웨스트바운드와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때 레빌롯 레코드가 팔리아멘트라는 이름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면서 조지 클린턴은 소송 끝에 밴드 이름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지만 팔리아멘트의 멤버들은 유지한채 아예 펑카델릭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새로 만들게 된다. 즉 팔리아멘트와 팡카델릭은 사실상 둘이서 하나인 같은 밴드인 것. 다만 하는 음악이 약간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4], 조지 클린턴과 밴드의 멤버들은 펑카델릭과 팔리아멘트의 레이블을 따로 계약하고 음반도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의 명의로 따로 발매하였다. 다만 공연시에는 현실적으로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의 라이브를 따로 할 수는 없었기에 팔리아멘트-펑카델릭,또는 P-Funk라는 괴이한 명의로 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어찌됐건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은 하는 음악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동일한 밴드였기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에 헌액 될 때도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은 꼭 팔리아멘트-펑카델릭이란 명의로 올라가게 되었다.

3.2. 펑카델릭[편집]

위에도 설명되었듯이 조지 클린턴이 웨스트바운드 레코드와 계약한 후 팔리아멘트의 멤버들을 유지한채 새로 만든 밴드의 이름은 펑카델릭이었는데, 이들이 지향하던 음악이 펑크와 사이키델릭 록의 중간선상에 있는 음악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적절한 이름.

1970년에 이들의 첫 번째 앨범 "Funkadelic"이 발매 되었으며, 빌보드 200에서 126위를 차지하였다. 아쉽게도 이 당시 계약상의 문제로 버니 워렐 등의 핵심 멤버 여러명이 크레딧에 이름이 표기되지 않았다. 이후 2집 "Free Your Mind... and Your Ass Will Follow"부터는 제대로 이름이 표시되기 시작한다. 1971년에는 펑카델릭을 상징하는 앨범 "Maggot Brain"이 발매되었는데, '창작력과 상상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의 펑카델릭을 담아냈다'고 평가 받으며,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기타리스트 에디 헤이즐의 처연한 기타 연주가 빛나는 10분짜리 연주곡인 오프닝 곡 "Maggot Brain"은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100대 기타 명곡에서 60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Maggot Brain은 펑카델릭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었기도 한데, 이 앨범 이후 타울 로스, 빌리 넬슨, 티키 풀우드, 에디 헤이즐 등의 멤버가 각자의 이유로 밴드를 탈퇴하였기 때문.

Maggot Brain 이후 펑카델릭의 라인업은 크게 확대되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백 밴드인 JB's의 몇몇 멤버가 펑카델릭에 합류하였으며,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중 한 명이자 P-Funk 사운드의 큰 축이었던 붓시 콜린스도 이때 합류하였다. 1972년, 펑카델릭은 이 새로운 라인업으로 더블 앨범 "America Eats Its Young"을 발매했다. 1975년 펑카델릭은 "Let's Take It to the Stage"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앨범은 그때까지 발매된 펑카델릭의 앨범 중 가장 성공적인 앨범이었으며, 빌보드 200에서 102위를 하였다. 이후 10대 기타 신동 마이클 햄튼이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되고, 펑카델릭은 웨스트바운드 레코드를 떠나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 새 계약을 맺었으며, 1976년에 워너 브라더스에서의 첫 번째 앨범인 "Hardcore Jollies"를 발매하였다. 한편, 웨스트바운드 레코드는 펑카델릭이 떠난 직후 "Tales of Kidd Funkadelic"이라는 제목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펑카델릭은 1978년 오하이오 플레이어스키보디스트였던 월터 '주니' 모리슨을 영입하고는 상업적, 비평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인 "One Nation Under a Groove"를 발매하게 된다.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 곡 "One Nation Under a Groove"은 빌보드 R&B 차트에서 1위, 빌보드 핫 100에서 28위, 영국 차트에서 9위를 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9년 발매된 "Uncle Jam Wants You"는 전 앨범에서 시도하였던 댄스 음악 기반의 사운드를 더욱 확장한 앨범이었으며, 수록곡 "(Not Just) Knee Deep"은 역시 빌보드 R&B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펑카델릭은 앞으로도 성공적인 활동을 펼쳐나갈 것 같았으나 안타깝게도 80년대 초반 운영, 급여 문제로[5] 일부 멤버들이 탈퇴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팔리아멘트의 레이블이 금전적인 문제로 파산하자, 조지 클린턴은 결국 1982년 팔리아멘트와 펑카델릭을 해체하였다. 조지 클린턴은 이후로도 팔리아멘트-펑카델릭 멤버들과 함께하며 P-Funk 올스타즈(P-Funk All-Stars)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솔로 명의와 P-Funk 올스타즈의 명의로 앨범을 계속 발매하였다.

이후 2005년에 이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으며, 웨스트바운드 레코드는 2008년 "Toys"라는 이름의 아웃테이크와 데모 곡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2013년에는 펑카델릭 멤버들이 재결합을 하여 슬라이 스톤과 콜라보를 하여 25년 만에 "The Naz"라는 싱글을 발매하였으며 2014년 33년만에 3CD 앨범인 "First Ya Gotta Shake the Gate"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4. 평가와 영향력[편집]

지미 헨드릭스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등의 영향을 받아 펑크 음악과 사이키델릭 록을 결합하여 흑인 음악의 새 가능성을 보여준, 70년대 최고의 펑크(funk) 록 밴드로 꼽히며,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의 펑크 밴드가 크게 영향을 받은 밴드이다.[6] 이외 토킹 헤즈갱 오브 포 같은 포스트 펑크 밴드의[7] 날카로우면서도 그루비한 베이스/리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팔리아멘트-펑카델릭과 조지 클린턴은 록 음악을 넘어 힙합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한데, 2Pac, 아웃캐스트, 우-탱 클랜, 데 라 소울, 퍼블릭 에너미, 라킴 등의 여러 거물 힙합 뮤지션들이 이들의 곡을 많이 샘플링하였다. 이로 인해 조지 클린턴은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샘플링이 많이 된 뮤지션 중 한 명이 되는 영예을 얻기도 하였다.

특히 Dr. Dre, Snoop Dogg, Above The Law, Warren G 등의 뮤지션이 팔리아멘트-펑카델릭의 P-Funk에 영향을 받아 G-funk를 창조해 내기도 하였다. 7~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미국 흑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는 그룹이다.

선 라와 함께 아프로퓨처리즘 콘셉트를 선보인 밴드라서 이 쪽으로도 언급된다.

5. 디스코그래피[편집]

5.1. 펑카델릭[편집]

5.1.1. 앨범[편집]

  • Funkadelic (1970)
  • Free Your Mind... and Your Ass Will Follow (1970)
  • Maggot Brain (1971)
  • America Eats Its Young (1972)
  • Cosmic Slop (1973)
  • Standing on the Verge of Getting It On (1974)
  • Let's Take It to the Stage (1975)
  • Tales of Kidd Funkadelic (1976)
  • Hardcore Jollies (1976)
  • One Nation Under a Groove (1978)
  • Uncle Jam Wants You (1979)
  • Connections & Disconnections (1980)
  • The Electric Spanking of War Babies (1981)
  • By Way of the Drum (2007)
  • Toys (2008)
  • First Ya Gotta Shake the Gate (2014)

5.1.2. 싱글[편집]

5.1.2.1. 빌보드 핫 100 1 ~ 40위[편집]
5.1.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편집]
  • I'll Bet You (1969) - 63위
  • I Got a Thing, You Got a Thing, Everybody's Got a Thing (1970) - 80위
  • I Wanna Know If It's Good to You? (1970) - 81위
  • You and Your Folks, Me and My Folks (1971) - 91위
  • Can You Get to That (1971) - 93위
  • Better by the Pound (1975) - 99위
  • (Not Just) Knee Deep (1979) - 77위

5.2. 팔리아멘트[편집]

5.2.1. 앨범[편집]

  • Osmium (1970)
  • Up for the Down Stroke (1974)
  • Chocolate City (1975)
  • Mothership Connection (1975)
  • The Clones of Dr. Funkenstein (1976)
  • Funkentelechy vs. the Placebo Syndrome (1977)
  • Motor Booty Affair (1978)
  • Gloryhallastoopid (1979)
  • Trombipulation (1980)
  • Medicaid Fraud Dogg (2018)

5.2.2. 싱글[편집]

5.2.2.1. 빌보드 핫 100 1 ~ 40위[편집]
5.2.2.2. 빌보드 핫 100 41 ~ 100위[편집]
5.2.2.3. 그 외 싱글[편집]
  • Breakdown (1971) - 빌보드 핫 100 107위
  • Dr. Funkenstein (1977) - 빌보드 핫 100 102위
  • Bop Gun (Endangered Species) (1977) - 빌보드 핫 100 102위

6. 여담[편집]

* 멤버 중 백인 멤버도 한 명 있었다. 론 바이코우스키(Ron Bykowski)라는 기타리스트로, 2014년 타계했다.

[1] 펑카델릭의 멤버들은 이 외에도 수십명이 더 있으나 다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하므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멤버들만 작성함.[2] 밴드의 이름은 동명의 담배에서 따왔다고 한다.[3] R&B의 한 종류로, 보컬 하모니가 주축을 이루는 흑인 음악.[4] 펑카델릭이 사이키델릭 록적인 펑크를 지향햤다면, 팔리아멘트는 사이키델릭하면서도 좀 더 소울풀한 펑크를 추구했었다.[5] 밴드 성원이 굉장히 많은 밴드였다. 핵심 멤버만 뽑아도 17명이나 될 정도. 이 문제 때문에 충돌이 잦았던 걸로 추정된다.[6] 조지 클린턴은 RHCP의 2집 앨범인 "Freaky Styley"의 프로듀싱을 해주기도 하였다.[7] 레드 핫 칠리 페퍼스도 이들 영향을 받았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1.  
  2.  
  3.  
  4.  
  5.  
  6.  
  7.  
  8.  
  9.  
  10.  
최근 변경
  •  
  •  
  •  
  •  
  •  
  •  
  •  
  •  
  •  
  •  
  • Operado por umanle S.R.L.
  • Hecho con ❤️ en Asunción, República del Paraguay
  • Su zona horaria es GMT
  • Impulsado por the seed engine

This site is protected by reCAPTCHA and the Google Privacy Policy and Terms of Service apply. This site is protected by hCaptcha and its Privacy Policy and Terms of Service ap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