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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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보르본 왕조 제13대 국왕 펠리페 6세 Felipe VI | |||||||||||||||||||
출생 | |||||||||||||||||||
재위기간 | 스페인 국왕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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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 작위[편집]
문장[4] |
공식 칭호는 스페인의 왕(Rey de España), 카스티야·레온·아라곤·양 시칠리아·예루살렘·나바르·그라나다·톨레도·발렌시아·갈리시아·마요르카·세비야·사르데냐·코르도바·코르시카·무르시아·하엔·알가르브·알헤시라스·지브롤터·카나리아 제도·동인도 및 서인도 제도 그리고 대양의 섬들과 대지의 왕(Rey de Castilla, de León, de Aragón, de las Dos Sicilias, de Jerusalén, de Navarra, de Granada, de Toledo, de Valencia, de Galicia, de Mallorca, de Sevilla, de Cerdeña, de Córdoba, de Córcega, de Murcia, de Jaén, de los Algarves, de Algeciras, de Gibraltar, de las Islas Canarias, de las Indias Orientales y Occidentales, y de las Islas y Tierra Firme del Mar Océano), 오스트리아의 대공(Archiduque de Austria), 부르군트와 브라반트·밀라노·아테네 및 네오파트라의 공작(Duque de Borgoña y de Brabante, de Milán, de Atenas y de Neopatria), 오리스타노의 후작(Marqués de Oristano), 합스부르크·플랑드르·티롤·바르셀로나·루시용·세르다냐 및 고샤노의 백작(Conde de Habsburgo, de Flandes, del Tirol, de Barcelona, del Rosellón, de la Cerdaña y del Gocíano), 비스케이와 몰리나의 영주(Señor de Vizcaya y de Molina)이다.[5]
- 스페인의 인판테 펠리페 전하 Su Alteza Real el Infante Felipe de España (1968년 1월 30일 ~ 1977년 1월 22일)
- 아스투리아스 공 전하 Su Alteza Real el Príncipe de Asturias (1977년 1월 22일 ~ 2014년 6월 19일)
- 국왕 폐하 Su Majestad el Rey de España (2014년 6월 19일 ~ 현재)
2.1. 생애[편집]
2.2. 재위 이후[편집]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건강 악화 및 사치스러운 행동에 대한 국민의 비난에 책임을 지고 2014년 6월 18일 퇴위하여, 6월 19일 0시를 기해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제 위기 및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조별리그 탈락 등[6] 국가적 악재 때문에, 화려한 축하 행사는 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대관식[7] 등 전통적인 가톨릭 예식도 배제했다. 그리고 같은 날 왕위 승계와 왕정 유지에 반대하는 공화파 시위가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인 솔 관문 광장을 비롯한 스페인 전국에서 터졌고, 이 과정에서 3명이 연행되면서 결과만 보면 즉위 첫날부터 반대파 정치범에 탄압을 가한 국왕이 되어버렸다.[8]
그럼에도 펠리페를 향한 기대감은 꽤 큰 편이었기에 한 조사에서 국민들로부터 66%의 지지를 얻었다. 추문으로 왕실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입헌군주제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는 와중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지지다. 기본적으로 낡은 왕실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펠리페 자체가 가진 소탈하고 수더분한 매력이 많은 호감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즉위 직후 첫 공식 외국 방문지는 바티칸으로 결정되었으며, 6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이어 다음 달 7일에는 모로코를, 14일에는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등 주변국을 잇달아 찾았다.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스페인의 2015년~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에도 힘을 보탰다.
2017년 들어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자체독립 투표를 실시하고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제가 불거지자 국왕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 스페인 왕실의 입장은 "스페인 헌법에 위반되기에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용인될 수 없다"로 요약될 수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독립 움직임에 '자치권 몰수'라는 강경카드로 압박하고 있다.
2019년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다시 커지자 가족들과 직접 바르셀로나에 방문하였다. 특히 왕위 계승자인 맏이 레오노르 공주가 펠리페 6세 국왕이 수여하는 청년공로상 시상식에서 카탈루냐어로 연설하는 등 반독립 여론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에 겹쳐 8월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각종 비리 문제로 국외 망명을 떠나면서 분노한 국민들의 왕정 폐지 여론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 펠리페 6세에게도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찾아온 상태이다. 펠리페 6세는 아버지 유산의 상속을 포기한다고 발표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국가 연금도 취소했다.
2021년 3월 25일. 스페인 국왕으로 역사상 첫 안도라 공식방문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펠리페를 향한 기대감은 꽤 큰 편이었기에 한 조사에서 국민들로부터 66%의 지지를 얻었다. 추문으로 왕실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입헌군주제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는 와중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지지다. 기본적으로 낡은 왕실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펠리페 자체가 가진 소탈하고 수더분한 매력이 많은 호감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즉위 직후 첫 공식 외국 방문지는 바티칸으로 결정되었으며, 6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이어 다음 달 7일에는 모로코를, 14일에는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등 주변국을 잇달아 찾았다.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스페인의 2015년~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에도 힘을 보탰다.
2017년 들어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자체독립 투표를 실시하고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제가 불거지자 국왕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 스페인 왕실의 입장은 "스페인 헌법에 위반되기에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용인될 수 없다"로 요약될 수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독립 움직임에 '자치권 몰수'라는 강경카드로 압박하고 있다.
2019년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다시 커지자 가족들과 직접 바르셀로나에 방문하였다. 특히 왕위 계승자인 맏이 레오노르 공주가 펠리페 6세 국왕이 수여하는 청년공로상 시상식에서 카탈루냐어로 연설하는 등 반독립 여론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2020년 코로나 19 사태에 겹쳐 8월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각종 비리 문제로 국외 망명을 떠나면서 분노한 국민들의 왕정 폐지 여론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 펠리페 6세에게도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찾아온 상태이다. 펠리페 6세는 아버지 유산의 상속을 포기한다고 발표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국가 연금도 취소했다.
2021년 3월 25일. 스페인 국왕으로 역사상 첫 안도라 공식방문이 이뤄졌다.#
3. 결혼[편집]
펠리페는 유럽에서 인기있는 남성 왕족 중 한 사람이었다. 197cm의 큰 키에 믿음직한 외모, 스포츠로 다져진 몸매, 거기에 더해지는 '스페인의 왕세자'란 타이틀은 그를 20살 무렵부터 인기인에 꼽히가 했다. 그렇다 보니 연애도 늘 화제가 되었다. 그간 스페인 귀족 출신의 이사벨 사르토리우스, 미국 조지타운대 유학 시절 만난 여대생 지젤 하워드, 노르웨이의 속옷 모델 에바 새넘 등과 차례로 교제했다. 하지만 국적과 귀천을 가리는 왕실과 보수층의 벽에 막혀 새넘과의 결실을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9]
결혼식 |
현재 아내인 4살 연하의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와는 1년 남짓한 연애 끝에 2004년 5월 22일에 결혼했다. 레티시아는 원래 스페인 국영방송에서 앵커를 했던 언론인으로, 펠리페와 결혼하기 전에 나이 많은 고등학교 철학 교사와 결혼했지만 얼마 못 가 이혼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첫 남편과 10대 때부터 사귀며 동거했던 게 드러나 더 논란이었다. 이혼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인 시절에 미국인 유부남과 불륜 관계였다고 하고, 낙태 및 마약 복용 같은 좋지 못한 과거가 있다는 주장을 그녀의 친척이 제기하여 파문이 일기도 했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펠리페 6세 (Felipe VI) | |||
부르봉양시칠리아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공주 (Princess María de las Mercedes of Bourbon-Two Sicilies) | |||
부르봉양시칠리아의 카를로스 왕자 (Prince Carlos of Bourbon-Two Sicilies) | |||
오를레앙의 루이즈 공주 (Princess Louise of Orléans) | |||
4.2. 자녀[편집]
2023년 가족 사진 |
자녀 | 이름 | 출생 |
1녀 | ||
2녀 |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장녀는 2005년 10월에 태어난 아스투리아스 여공 레오노르이며 차녀는 2007년 4월에 태어난 인판타 소피아다. 현재 스페인 왕실은 남자 우선 왕위승계법을 두고 있지만,[10] 현재 펠리페에게 아들이 없기 때문에 후안 카를로스 1세 재위 시절부터 장녀인 레오노르가 차차기 왕위계승권자였다.
5. 여담[편집]
- 풍성한 턱수염이 특징으로, 2014년 즉위식 무렵에 잠시 깎았으나 다시 기르고 있다. 수염을 깎으면 어머니 소피아 왕대비와 비슷하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더더욱 닮아가고 있다. 스페인 왕실이 소피아 왕대비의 유전자가 강한지라 엘레나, 크리스티나, 펠리페 뿐만 아니라 손주들의 대부분이 소피아 왕대비와 닮았다.
-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와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황후의 현손자다. 외할머니 그리스의 프레데리키 왕비가 빌헬름 2세의 외손녀이기 때문. 엘리자베스 2세와는 9촌 관계이며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와도 9촌 관계이다. 찰스 3세와는 7촌관계가 된다.[12][13]
- 한국을 두 번 방문하였다. 첫 번째는 왕세자 신분이던 1988 서울올림픽 당시 누나 크리스티나 공주의 요트 경기를 참관하기 위한 방문이었고, 두 번째는 2019년에 수교 70주년을 기념하여 방문했다. 해당 방한에서 레티시아 왕비와 함께 10월 24일 서울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요트 선수로 참가한 경력이 있으며, 당시 개최국인 스페인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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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번째 이름인 펠리페는 스페인 보르본 왕조 시조인 펠리페 5세에서, 두번째 이름인 후안은 친할아버지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에서, 세번째 이름인 파블로는 외할아버지 그리스 왕 파블로스(Παύλος Α΄ της Ελλάδας)에서, 알폰소는 친증조할아버지 알폰소 13세에서 따왔고, 마지막으로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de Todos los Santos)는 스페인어로 '모든 성인'이라는 뜻이다. 성씨 보르본 이 그레시아는 부계와 모계의 성씨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2] #[3] 당시 룸메이트가 1살 위의 외사촌형인 그리스의 마지막 왕세자인 파블로스였다고 한다.[4]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스티야 왕국, 레온 왕국, 나바라 왕국, 그라나다 왕국, 아라곤 왕국의 깃발. 가운데는 보르본 왕가의 문장.[5] 거의 대부분은 아버지가 달고 있었던 것들이다. 유럽 군주들은 과거 보유했던 칭호들을 현실과 상관없이 유지하는 관습이 있으며, 칭호를 남겨둔다고 해서 진지하게 그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당 국가들과는 정상적으로 외교관계를 맺는다.[6] 참고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은 1954 스위스 월드컵,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70 멕시코 월드컵, 그리고 1974 서독 월드컵의 4개 대회를 예선탈락으로 나가지 못한 것 외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탈락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만큼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조별라운드 탈락은 국가적인 충격이었던 셈. 더욱이 메이저 대회 3연패를 기록한 팀이자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리그 2연패로 조기 탈락하였기에 충격이 더했다.[7] 다만 스페인은 1379년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후안 1세 이후로는 대관식을 하지 않았다. 아라곤 왕국으로 범위를 넓혀도 1414년 페란도 1세가 마지막이었으며, 나바라 왕국은 1484년 카탈리나와 호아네스 3세가 마지막으로 대관식을 치렀다.[8] 사실 치안 문제를 비롯한 스페인의 국가 행정 대부분은 법적으로 행정부의 책임이지, 왕의 책임은 아니긴 하다. 스페인은 엄연히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이지, 전제군주제가 아니기 때문. 그러나 군대, 경찰, 사법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스페인 보수 우익 세력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부터 각종 혼맥과 인맥으로 결속되어 있는데 이들의 구심점에 스페인 보르본 왕가가 있다. 따라서 왕실에게 책임의 화살이 날아간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국이지만, 국정의 많은 부분이 사적인 이해 관계로 움직이는 나라 스페인에서 그 사적 이해 집단의 중심에 바로 스페인 보르본 왕가가 있는 것이다.[9] 결과적으로 새넘이 펠리페와 결혼하는 데 실패한 이유는 호콘 왕세자하고 메테마리트와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입은 드레스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도 아니고 로열 웨딩에서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어서 당시에도 욕을 엄청 먹었고, 지금도 최악의 로열 웨딩 하객 패션으로 꼽힐 정도.[10]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에게는 큰 딸인 엘레나 공주와 작은 딸인 크리스티나 공주가 있었지만, 남자 왕족 우선의 왕위 승계법상 왕위 계승자 지위는 아들이자 막내인 펠리페 6세에게 넘어갔다.[11] 실제로 펠리페는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참석했지만 정작 그는 가지 못했는데, 생일을 맞은 친구의 부모가 왕실에 어떻게 초대장을 보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 그때의 경험 이후 자신이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꺼린다고. 그래서 유럽의 명문대학이 아니라 미국의 학교로 유학을 떠난 것도, 펠리페가 스페인 왕실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립심을 키우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12] 요르요스 1세 기준으로 7촌이며, 크리스티안 9세 기준으로는 10촌, 빅토리아 여왕 기준으로는 10촌(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나 외조부 파블로스 쪽으로) 또는 11촌(외조모 프레데리카 왕비 쪽으로)이다. 즉, 부계 쪽으로 가나 모계 쪽으로 가나 결국 빅토리아 여왕이 조상이다.[13] 또한 러시아 황실인 로마노프 왕조 후손들 중 한 명인데, 두 사람 모두 니콜라이 1세의 손녀 올가 왕비의 후손이기 때문이다.[14]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상징[16] 현 스페인 왕실의 일상 거주지[17] 스페인 카탈루냐, 발렌시아, 발레아레스 제도 지방들의 공용어이며 아라곤 지방 일부에서도 쓰인다. 사실상 스페인의 제 2언어.[18] 펠리페 6세가 고등학교 시절 유학한 캐나다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공용어이다. 미국 생활까지 했으니 영어는 어려움 없이 구사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도 통역없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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