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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음력으로 계묘년(癸卯年) 3월 24일이고 그레고리력으로 133번째 날이며, 2023년 말까지 232일 남았다.
2023년 5월 13일과 10월 14일은 세계 철새의 날이다. 이날은 철새와 환경보존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국제연합(UN)이 정한 날로, 매년 5월과 10월의 둘째 토요일이 세계 철새의 날이다. 세계 철새의 날은 철새와 서식지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례 인식 제고 캠페인이며,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철새가 직면한 위협, 생태학적 중요성, 철새 보전을 위한 국제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높이는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2023년 세계 철새의 날은 철새를 위한 물과 물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은 지구 생명체의 핵심(fundamental)이다. 대다수 철새는 생애주기 동안 수생 생태계(aquatic ecosystem)에 의존한다. 즉 내륙과 해안 습지, 강, 호수, 개울, 늪, 연못(Inland and coastal wetlands, rivers, lakes, streams, marshes, and ponds)은 철새가 먹이를 먹고, 물을 마시고, 둥지를 틀고(feeding, drinking, or nesting) 긴 여정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하는데 필수적인 장소가 된다. 불행히도 수생 생태계는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위협받고 있으며, 이에 의존하는 철새도 마찬가지다. 물에 대한 인간의 수요 증가, 오염 및 기후 변화는 깨끗한 물의 가용성과 많은 철새의 보존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샤 자한은 바부르(Babur,1483 - 1530) - 후마윤(Humayun, 1508 - 1556) - 악바르(Akbar the Great, 1542 - 1602) - 자한기르(Jahangir 1569 - 1627)를 이은 다섯 번째 무굴 황제로 1628년부터 1658년까지 인도 아대륙을 통치했다. '샤 자한'은 페르시아어로 ‘세계의 왕’이라는 의미이다. 샤 자한은 어린 나이에 일찍이 자한기르 사후에 무굴 황제가 될 사람으로 정해져 있었다. 샤 자한은 위대한 무굴인 중 한 명으로 그의 치세는 무굴제국 또는 인도문명에서 가장 빛나는 시대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1618 - 1707)는 1658년 샤 자한이 병에 걸리자 그를 아그라 성(Agra Fort)에 죽을 때까지 감금했다. 그의 치세는 무굴 건축의 황금시대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샤 자한이 그의 아내 뭄타즈 마할(Mumtaz Mahal, 1593 - 1631)을 위해 아그라에 세운 전설적인 영묘인 타지 마할(Taj Mahal)이다. 진주 모스크와 같은 아그라의 건축물, 붉은 성, 자마 모스크와 같은 델리의 건축물, 라호르의 모스크와 라호르 성, 타타의 모스크 등도 샤 자한이 세운 건축물이다. 그 유명한 타흐테타우스 역시 샤 자한의 치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또한 지금은 구 델리라 불리는 샤자하나바드(Shahjahanabad) 를 만들어 새 수도로 삼았다. 샤 자한의 치세에 지어진 건축물 중에는 붉은 성의 디와니앰과 디와니하스도 있다. 델리의 궁성은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성으로 여겨진다. 붉은 요새는 인도의 델리에 있는 성으로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델리 북쪽 야무나 강변에 위치한 제7의 도성 샤자하나바드(Shahjahanabad) 동쪽에 서 있는 성채인 레드 포트(Red Fort)는 샤 자한 황제가 1639년에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1648년 아그라 성에서 이곳으로 천도했다. 이 성채는 적색사암으로 축조되어 델리 성 레드 포트라 지칭되고 있다.
에콰도르 공화국은 남아메리카 북서부에 있는 나라로 남쪽은 페루와 접경하고 북쪽은 콜롬비아와 접경해 있다. 수도는 키토(Quito)이고 최대 도시는 과야킬(Santiago de Guayaquil)이다. 국명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equador)라는 뜻이다. 본토에서 약 965km 떨어진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Islas Galápagos, 공식 명칭은 Archipiélago de Colón이며, 적도 주위 태평양 상의 19개 화산 섬과 주변 암초로 이뤄진 섬 무리)는 이 나라의 영토에 속한다. 이곳에는 독특한 동물군으로 유명한데 다윈 진화론이 탄생한 곳이고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1809년 8월 10일 독립을 선언하고, 1822년 5월 24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 1830년 5월 13일 그란 콜롬비아에서 분리하여 독립했다. 그란 콜롬비아(대콜롬비아)는 1819년부터 1831년까지 존재했던 콜롬비아 공화국으로 오늘날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영토 전체와 코스타리카, 페루, 브라질, 가이아나 영토의 일부를 포함했다. 그란 콜롬비아는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 해방 및 독립의 선구자인 시몬 볼리바르(Simón José Antonio de la Santísima Trinidad Bolívar Palacios y Blanco, 1783 -1830)가 설립되었으나, 독립 쟁취 후 연방주의자와 분리주의자 사이의 내분 등으로 시몬 볼리바르 등이 사망한 후에 해체됐다. 현재 에콰도르는 세계에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17개국 중 한 곳이다. 대륙 지역에는 세계 조류의 15%인 1,600여 종이 서식하고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고유종 38종 이상이 서식한다. 그 외 식물 25,000종이 있고 파충류 106종, 양서류 138종, 나비 6,000종이 있다.
브라질 황녀 이자베우는 브라질 제국(Império do Brasil; 황제가 통치한 입헌군주제 국가로 1822년 10월 12일에 성립하여 1889년 11월 15일 공화정으로 대체되기까지 존속)의 공주로 브라질 황실에 남자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 황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브라질 황실은 포르투갈 왕국에서 갈라져 나왔다. 1889년 제정이 폐지되면서 마지막 군주가 된 부황 페드루 2세(Pedro II, 1825 - 1891) 사후에 황녀 이자베우가 명목상의 브라질 황위를 계승했다. 1887년 3월 부황 페드로 2세가 병에 걸려 6월 30일 치료를 위해 유럽으로 떠나면서 이자베우 황녀가 섭정(攝政)이 됐다. 당시 브라질에서는 노예제 폐지론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지만, 보수당의 주앙 마우리시오 완데르라이(João Maurício Wanderley / Vanderlei, 1815 - 1889) 정부는 개혁 속도를 늦추려고 했다. 이자베우 황녀는 자신의 말로 노예해방 프로그램을 확장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정부에 더 많은 노예를 해방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1888년 초 리오 경찰이 노예제 폐지 찬성 시위를 잘못 처리한 후, 이자베우 황녀는 완데르라이 자리에 주앙 알프레도 코레이아 드 올리베이라(João Alfredo Correia de Oliveira, 1835 - 1919)를 임명했다. 그러자 올리베이라 정부는 무조건적으로 노예제 폐지를 지지하고 신속하게 입법을 도입했으며, 마침내 1888년 5월 13일 이자베우 황녀가 황금법(Lei Áurea / Golden Law)에 서명함으로써 브라질에서 노예제도를 완전히 종식시켰다.
네덜란드 망명 정부 또는 런던 내각(London Cabinet)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으로 도피한 네덜란드의 망명 정부다. 1945년 5월 독일이 네덜란드에서 철수한 이후 본국으로 돌아왔다. 1940년 이전 네덜란드는 중립국을 유지했으나 1940년 5월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한 이후 빌헬미나 여왕은 런던으로 도피했고, 디르크 얀 더 헤이르(Dirk Jan de Geer, 1870 - 1960) 수상 정부가 다음 날 영국으로 철수했다. 망명 정부는 런던의 그린파크 맞은편에 위치한 피카딜리 지역의 스트래튼 하우스에 자라를 잡았다. 1941년 여왕은 더 헤이르 수상을 불신하여 그를 해임하고, 윈스턴 처칠,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같이 일했던 법무장관 피터르 슈르츠 헤르브란디(Pieter Sjoerds Gerbrandy, 1885 - 1961)를 새 수상으로 임명했다.
서호주 노샘에서 태어난 칼린은 칼굴리광산학교(Kalgoorlie School of Mines)에서 광산 공학을 공부했다. 엔지니어 자격을 취득한 후 영국 탄광에서 일하기 위해 1939년 중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골드필즈(Goldfields)에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인도 육군 공병대에 배치되어 인도, 이탈리아 및 중동 전역에서 복무했다. 1946년 제대 후 미국인 아내 엘리노어(Elinore, 결혼 전 성은 Arone)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칼린은 군대에 있을 때 가졌던 아이디어에 자극을 받아 Half-Safe라고 명명 Ford GPA(Ford GPW Jeep의 수륙양용 버전)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부부 신혼여행을 제안했다.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에서 여행을 시작한 칼린 부부는 실패한 시도 끝에 마침내 1951년 대서양 횡단을 완료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일시적으로 버밍엄에 정착해 유럽을 여행했다. 그들은 1954년 다시 여행을 시작해 육로로 중동을 거쳐 캘커타에 도착했다. 호주로의 짧은 기금 모금 여행 후 아내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칼린은 새 파트너들과 함께 동남아시아와 극동을 거쳐 일본 최북단을 거쳐 알래스카까지 여행했다. 미국과 캐나다를 장기 여행한 후 그는 Half-Safe로 10년 동안 바다로 17,000km, 육지로 62,000km 이상을 여행한 후 몬트리올로 돌아왔다. 1981년 칼린 사망 후 Half-Safe는 그의 옛 학교에 전시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독교 역사상 제218대 교황 하드리아노 6세(Hadrianus PP. VI; 재위 1522 - 1523) 이래 455년 만의 비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계 교황이다. 동시에 20세기 교황 가운데 최연소로 즉위한 교황이기도 하다. 또한, 27년 가까이 재임한 그는 34년 동안 재임한 초대 교황 베드로(Pietro, 1? - 66?; 재위 33 - 67)와 31년 동안 재임한 제255대 교황 비오 9세(Pius PP. IX; 재위 1846 - 1878)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 동안 선진국에서는 가톨릭교회의 교세가 점차 기울어간 반면, 제3세계에서는 확장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치세 전반에 걸쳐 여행을 가장 많이 한 교황으로 전임자들보다 100개 이상의 나라를 더 방문했으며, 역사상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세계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모국어인 폴란드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크로아티아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동유럽의 반공주의 운동을 지원하고, 세계 평화와 반전을 호소하였으며, 생명윤리 등의 분야에서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도덕관을 제시하는 등 종교의 범위를 넘어 세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종교 간의 문제에는 시종일관 온건한 태도로 일관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2011년 5월 1일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PP. XVI, 1927 - 2022; 재위 2005 - 2013)에 의해 시복됐으며, 2014년 4월 27일 현재의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 PP., 1936년생; 재위 2013 ~ )에 의해 시성 되었다. 메흐메트 알리 아자는 터키의 암살자이다. 1979년 2월 1일 터키의 좌파 언론인 아브디 이펙치(Abdi İpekçi , 1929 - 1979)를 암살했으며, 터키 교도소에서 탈옥하여 1981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저격하여 큰 부상을 입혔다.
소마 탄광 폭발사고(Soma mine disaster)는 터키 마니사 주 소마의 탄광 지하의 폭발로 발생한 화재사고다. 폭발 원인은 탄광 내 전기설비 때문으로 추정된다. 탄광에서 작업 교대가 이뤄지던 중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 당시 지하에 있던 정확한 광부 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8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월 17일 5일 만에 구조 작업이 끝난 후 최종 사망자는 301명으로 집계됐지만, 현지 주민들과 노동조합은 정부가 희생자 규모를 축소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터키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1954년생)은 사고 현장에서 한 청년에게 “사고는 벌어진 일이고 이는 신의 섭리”라며 “이 나라의 총리에게 야유하면 너는 맞는다”라고 말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이 사건으로 터키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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