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세계]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PRB) 화가들 (상)  - 미래한국 Weekly
[예술 세계]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PRB) 화가들 (상) 
[예술 세계]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PRB) 화가들 (상) 
  • 오재학 전 주호치민 총영사
  • 승인 2024.05.20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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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


1837년 영국 하노버(Hanover) 왕조 출신인 18세의 빅토리아(Alexandrina Victoria) 여왕이 대영제국의 새로운 군주로 등극합니다. 그녀가 다스리는 64년 동안(1837~1901) 영국은 전 세계 식민지 를 획득하고 산업혁명을 통한 과학기술 진보와 인문·사회분야의 학문적 성취틀 통해 발전을 거듭함으로써 ‘해가 지지 않는 제국(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으로 군림하였습니다. 

라파엘 전파(PRB: Pre-Raphaelite Brotherhood)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인 1848년 영국에서 탄생한 젊은 화가와 시인들의 모임으로, 왕립미술원의 아카데미즘(academism)에 반기를 들고, 이탈리아 르네상스(Renaissance)미술의 정수를 보여준 라파엘로(Raphaello)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이들은 진정성과 자연주의를 중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사렛파(Nazarenes)’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나사렛파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파로 신고전주의에 반대했으며 종교적 영성(spirituality)과 함께 중세 후반 및 초기 르네상스 예술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했는데 오버벡(John Friedrich Overbeck), 프포르(Franz Pforr), 포겔(Ludwig Fogel), 호팅거(Johan Konrad Hottinger), 베이트(Philipp Veit), 코르넬리우스(Peter Cornelius) 등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라파엘 전파는 최초에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헌트(William Holman Hunt),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등 20대 초반 3명이 주축이 되었으나 곧이어 마이클(Michael Rossetti)과 콜린슨(James Collinson), 스티븐스(George Stephens), 울너(Thomas Woolner)가 합류하여 7명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주장한 ‘중세를 향한 동경(nostalgia for the Middle Ages)’이라는 주제는 훗날 번 존스(Edward Burne-Jones), 워터하우스(William Waterhouse)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들 이외에 추가로 참여한 외곽 참여자(outer circle)로는, 샌디스(Frederik Sandys), 휴즈(Arthur Hughes),솔로몬(Simeon Solomon), 암스테드(Henry Amstead), 페이튼(Joseph Paton), 쉴즈(Frederic Shields) 등이 있습니다. 또한 라파엘 전파의 멘토 역할을 했으나 라파엘 전파 화가로 분류되지 않는 화가로 브라운(Ford Madox Brown)이 있습니다. 

헌트의 '순수의 승리'
헌트의 '순수의 승리'

라파엘 전파(PRB: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초기 강령은 아래와 같이 천명되었습니다. 

(가) to have genuine ideas to express(표현을 위한 진심 어린 생각을 가질 것)

(나) to study nature attentively, to know how to express them(자연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기 위해 자연을 신경 써서(세심히) 배울 것)

(다) to sympathise with what is direct and serious and heartfelt in previous art to the exclusion of what is conventional ,self-parading and learned by rate(이전의 예술에서 관습적이고 자기과시적이고 주입식이었던 것들을 제거하고 직접적이고 진지하고 진심어린 것들과 교감할 것)

(라) to produce most indispen-sable of all,thoroughly good pictures and statues(철두철미하게 양호한 그림과 조각상을 제작할 것)

라파엘 전파는 이러한 강령의 실천을 위해 가난, 이민, 매춘과 함께 성도덕에 대한 이중적 잣대 등을 활용했습니다. 

라파엘 전파는 1400년대 이탈리아 예술의 강렬한 색감과 복합적인 구성과 풍부한 디테일로의 회귀를 추구했으며, 영국 비평가 러스킨(John Ruskin)의 종교적 논의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라파엘로(Raphaello), 미켈란젤로(Michelangelo), 그리고 매너리즘(mannerism) 화가들의 기계적 접근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이 강조했던 자연(nature), 정형(pattern), 장식(ornamentation)은 훗날 ‘아르 누보(art nouveau)’ 양식의 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파엘 전파는 특히 ‘라파엘 전파 여성(Pre-Raphaelite women)’이라는 개념을 창출하여 키크고, 가냘프고, 창백하고, 타래머리를 하고, 입술이 붉고, 우울한 여성상을 만들어내서 빅토리아(Victoria)시대의 표준 미인상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밀레이의 '신데렐라'
밀레이의 '신데렐라'

1400년대 이탈리아 예술의 강렬한 색감과 풍부한 디테일로의 회귀 추구

셰익스피어(Shakespeare), 테니슨(Alfred Tennyson) 등이 주도한 영국문학의 소재들을 즐겨 사용한 라파엘 전파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번성했던 영문학 발전이 불러온 지극히 영국적인 현상이 었습니다. 당시 영국문학과 중세의 낭만적 소재를 주로 그리면서 희곡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풀잎 하나, 치맛자락 주름 한 솔기까지 강박적일 만큼 세세하게 그렸으며, 겉으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와 낭만주의 사이를 절묘하게 접목시키는 독특한 위상을 견지했습니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자신들 그림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코발트 청색(cobalt blue), 산화크롬(chromium oxide), 아연황(zinc yellow), 에메랄드 녹색(emerald green) 등을 주로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전성기’의 고전주의를 답습한 영국 왕립 아카데미(Royal British Academy)의 고루하고 기교에 치우친 회화에 반대하고 라파엘로 이전의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소박하고 단순한 양식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그들의 주제는 아름답고 싯적이며 상징적 세계로, 주로 고대 신화나 중세문학, 셰익스피어 문학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신화적 인물로 가득 찬 낭만의 세계는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당시 세계가 18세기 산업혁명과 대영제국의 탐욕스런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꿈과 환상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도덕적으로도 크게 타락했음을 질타합니다. 그들은 매혹적인 마법의 세계를 동경했고 예술가들의 임무는 사람들에게 현실로부터의 탈출구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설파하였습니다. 
라파엘 전파는 이에 따라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이전의 화가였던 반 에이크(Jan van Eyck), 멤링(Hans Memling), 지오토(Giotto di Bondone), 안젤리코(Fra Angelico)등의 화가를 숭배하고 그들의 화풍을 따르는 데 작품동의 중점을 뒀습니다. 

라파엘 전파 화가들이 지향하는 미술 형식은 1849년 로세티(Rossetti)와 헌트(Hunt)의 프랑스, 벨기에 순례여행 이후 두드러집니다. 그들은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과 벨기에 브뤼즈(Bruges)에서 접한 15세기 르네상스 작품들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Hunt가 ‘가장 우아하고 정교한 작품’이라고 극찬한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성처녀 마리아 대관식(Coronation of Virgin Mary)’은 명확한 윤곽선과 밝은 색채가 강한 정신성과 효과적으로 융합된 걸작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또한 영국 국립미술관에서 구입한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아르놀피니의 결혼(Marriage of Giovanni Arnolfini)’은 자연과 인물의 세부를 극도로 충실하게 묘사함으로써 라파엘로 이전 시대의 탁월한 사실주의 화풍을 접할 수 있는 수작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라파엘 전파는 이처럼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과 플랑드르(Flanders) 미술이 보여준 밝고 강렬한 색채와 풍부한 세부 묘사, 이로 인한 진솔하고 평면적인 화면을 선호했는데, 라파엘 전파 특유의 사실주의, 복고주의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제지간의 예의와 엄격한 위계질서가 최고의 덕목이던 빅토리아 여왕시대 영국에서 레이놀즈(Joshua Reynolds)로 대표되는 기존의 아카데미즘(academism)에 대한 전격적인 반란이었습니다. 기존 회화의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한 측면에서 마네(Edouard Manet)를 필두로 하는 프랑스 인상파의 반란과 유사합니다. 

라파엘 전파는 종교적 상징주의, 호화로운 영상 중심주의, 자연적 심미주의 같은 르네상스 이전의 고전주의적 미적 가치를 중시했습니다. 그들은 미스터리(mystery), 우울함(melancholy) 같은 감각을 일궈내 상징주의나 데카당스(decadence) 운동과 연관된 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1856년 이후 로세티(Rossetti)는 중세지향적인 라파엘 전파 핵심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자연과 낭만이라는 2가지 유형의 연결자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 이후 ‘치명적 요부(팜므 파탈:femmes fatales)’에 관한 그림을 그렸는데, 특히 모리스(William Morris)부인 제인(Jane)을 모델로 하여 프로세피나(Proserpina), 백일몽(Day dream), 톨로메이(La pia de Tolomei) 등을 그립니다.

한편 1850년 이후 헌트(Hunt)와 밀레이(Millais)는 중세미술의 단순모방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내용을 강조합니다. 라파엘 전파는 또한 스코틀란드(Scotland) 예술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라파엘 전파의 화풍은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출현 당시보다는 그 이후에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19세기 말에 유행한 아르 누보(Art nouveau)양식에 있어 장식적인 꽃무늬와 첨예한 곡선, 아름다운 여인상 등은 여기서 영향 받은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라파엘 전파 활동 당시 ‘여성 라파엘 전파(PRS:Pre-Raphaelite Sisterhood)’라는 호칭도 유행했는데 이는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연관된 모델(model), 뮤즈(muse), 배우자(wife), 동거인(partner) 등을 일컫는 표현으로서 이들 여성 중에는 본인이 직접 그림을 그린 화가들도 포함되었습니다. 

PRS 에는 주로 모델로 활동했던 에피 밀레이(Effie Gray Millais), 시달(Elizabeth Siddal), 밀러(Annie Miller), 콘포트(Fanny Conforth), 이튼(Fanny Eaton)과 함께 화가였던 드 모건(Evelyn de Morgan), 죠지나(Georgina Burne-Jones), 메리 보이스(Joanna Mary Boyce), 스틸만(Marie Spartali Stillman)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시인이며 로세티(Ross-etti)의 누이였던 크리스틴(Christine), 번 존스의 모델이었던 잠바코(Maria Zambaco), 모리스(Morris)의 아내였던 제인(Jane),을 비롯하여 샌디스(Emma Sandys), 스미스(Barbara Leigh Smith), 솔로몬(Rebecca Solomon), 스토크스(Marianne Stokes), 카메론(Julia Margaret Cameron), 번스(Kate Bunce), 그리고 매독스 브라운(Madox Brown)의 누이들이었던 루시(Lucy), 캐더린(Catherine)도 여성 라파엘 전파(PRS) 범주에 포함되었습니다. 

대표적인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활동을 살펴봅니다. 

로세티의 '베로나의 여인 베로니카'
로세티의 '베로나의 여인 베로니카'

기존 회화의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한 라파엘 전파

- 밀레이
(John Everett Millais : 1829~1896)

1829년 영국 사우댐프턴(Southam-pton)에서 출생한 화가, 삽화가로서 왕립 미술학교(Royal academy)를 11세에 들어간 천재였습니다. 밀레이 어머니는 미술과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맹자의 어머니처럼 아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다녔습니다. 

1840년 미술학교 입학 후 헌트(William Holman Hunt),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등을 만났고, 1848년 라파엘 전파를 결성합니다. 1850년대 중반 밀레이는 라파엘 전파 화풍에서 멀어져 새로운 형식의 사실주의(realism)를 개척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밀레이의 개인적 결혼 문제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는 러스킨(John Ruskin)의 부인이었던 에피(Effie)와 결혼 후 화풍에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들 부부는 슬하에 4남 4녀를 두고 40년을 해로합니다. 에피와의 결혼 후 밀레이의 화풍은 더 대담해졌는데 이는 많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현실적 목적에 기인했다 여겨집니다. 

모리스(William Morris)는 밀레이가 돈벌이와 인기 때문에 그림의 질을 떨어뜨렸다고 비난했습니다. 밀레이의 새로운 스타일은 휘슬러(John Whistler), 무어(Albert Moor),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등의 화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870년 이후에는 풍경화를 많이 그렸는데 우울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한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1896년에는 미술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으나 바로 그 해 인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오펠리아(Ophelia), 에스더(Esther), 추운 10월(chill October), 부모집의 그리스도, 평온의 골짜기, 신데렐라 (Cinderella), 눈먼 소녀(blind girl) 등이 있습니다. 

- 헌트
(William Holman Hunt : 1827~1910)

1827년 런던에서 출생해 라파엘 전파의 창립회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세밀한 묘사와 생생한 색감, 정교한 상징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러스킨(John Ruskin), 카알라일(Thomas Carlyle)의 문학 작품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헌트는 두 번에 걸쳐 결혼했는데 모델인 밀러(Annie Miller)와의 파혼 후 1861년 파니(Fanny Waugh)와 처음 결혼했고 1866년 파니가 이탈리아에서 출산도중 사망하자 피렌체 소재 영국인 묘지에 안장하고 다시 파니의 여동생인 에디트(Edith)와 결혼했습니다. 헌트는 초기에 도시와 농촌 풍경을 주로 그렸으나 곧바로 종교적인 그림으로 선회하였습니다. 1854~1892년 사이 4차례에 걸쳐 성지를 순례하고 이를 통해 더욱 더 사실성이 풍부한 그림을 그렸고 결국 예루살렘에 주택을 건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1차 방문시 헤브론(Hebron)과 베들레헴(Bethlehem)을 다녀온 후 사도들의 발자취를 그리고, 2차 방문 이후에는 예수(Jesus's Christ)와 성모자(Madonna and Child)를 그립니다. 3차 방문 후에는 가자 지구(Gaza)와 함께 천국과 야곱의 사다리를 그립니다. 4차 방문 후에는 예루살렘 성묘교회를 그렸습니다. 

헌트의 주요작품으로는 세상의 빛(Light of the world), 속죄양(Scapegoat), 죽음의 그림자(Shadow of death), 깨어나는 양심(awakening conscience), 신성한 불의 기적 등이 있습니다.

- 로세티
   (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

1828년 런던에서 출생한 시인이며 화가로서 이태리 시인 단테에게 무한한 동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비롯하여, 셰익스피어, 디킨스, 스콧, 바이런 등의 문학작품에 심취했습니다. 초창기엔 매독스 브라운(Ford Madox Brown)의 그림에 매료되었는데, 후일 헌트와 밀레이 그림에 감명을 받게 되고 이들과 함께 1848년 라파엘 전파를 창립하게 됩니다. 

1850년 시달(Elizabeth Siddal)을 만나 1860년 결혼했으나 2년만에 부인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합니다. 뮤즈(muse)이고 제자(pupil)이며 열정(passion) 그 자체였던 부인이 죽자 그 자신도 은둔 생활을 하며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게 됩니다.

‘리치(Lizzi)’라는 애칭으로 불린 시달은 풍성한 빨간색 곱슬머리에 짙은 눈꺼풀을 가진, 키가 크고, 인상적인 이목구비의 소유자로 본래 모자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인물입니다. 밀레이가 그린 오펠리아(Ophelia)는 바로 시달을 모델로 그린 그림입니다. 로세티는 이후 동료였던 모리스(William Morris)의 아내인 제인(Jane Morris)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를 모델로 한 많은 작품을 그립니다. 

1865년 콘포트(Fanny Conforth), 윌딩(Aleva Wielding) 등도 모델로 만나 그림을 그립니다. 1872년 정신병 발작이 시작된 후 지속적으로 약물과 알콜중독에 시달리게 되고, 1882년 심장질환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프로세르핀(Proserpine), 피암메타(Fiammeta)환영, 마리아나(Mariana), 트로이의 헬렌(Helen of Troy), 베아타 베아트릭스(Beata Beatrix) 등이 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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